Sep 182017
 

여진족, 만주족이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한 역사는 한편의 드라마다. 어떻게 백만이 채 안되는 소수 민족이 거대한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었을까? 많은 역사학자와 저자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청나라 제국의 열두 황제들, 그 중에서도 청 태조 누르하치, 청 태종 홍타이지, 순치제 푸린 3대에 걸친 청나라의 굴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청 태조 누르하치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에서 저자 옌 총니엔은 누르하치 편에서 청나라(후금)를 세운 누르하치의 10대 공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여진 통일, 동북 통일, 만문 창제, 팔기 제도 창설, 만주족 형성, 후금 수립, 군제 재정비, 유화정책 제정, 사회개혁 추진, 심양 천도. 그리고 누르하치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천합(天合), 지합(地合), 인합(人合), 기합(氣合)의 실현’이라고 본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는 맹자가 말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세 요소와 개인의 대업을 성공할 수 있는 기본 소질 ‘기합(氣合)’을 덧붙여 누르하치와 여진족의 성공을 분석하고 있다. 일생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승승장구하던 누르하치가 영원성 전투에서 명나라 장수 원숭환에게 패하는데 저자가 분석하는 패배의 원인과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와 원숭환의 재대결도 매우 재미있다.

청 태종 홍타이지
누르하치의 8남으로 35세에 아버지 누르하치에 이어 황제로 등극한 청 태종 홍타이지는 52세로 사망할 때까지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는 기초를 세운 황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지적하는 홍타이지의 업적은 다음과 같다. 구태정치 청산과 만족과 한족 조정, 만주족과 대청이라는 명칭 사용, 체제 완비, 홍의 대포와 포병부대 창설, 두 차례 조선 정복, 삭륜 정복, 세 차례 몽고 정벌, 다섯 차례 중원 공략. 저자는 홍타이지가 조전을 정복함으로써 일석삼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분석했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홍타이지 편에서 분석하는 홍타이지의 문치(文治), 무공(武功), 모략(謨略)의 능력은 우리가 뼈저리게 반성하며 배워야 하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병자호란과 남한산성, 삼전도 치욕의 역사를 남긴 장본인이 홍타이지이기 때문이다.

순치제 푸린
갑작스러운 홍타이지의 죽음으로 인해 6세의 푸린이 어부지리로 황위에 올랐다. 청나라 역사상 유명한 소년 천자 순치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순치제 편에서 분석하는 순치제 등극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다. 새로운 황제들의 등극 과정에서 펼쳐지는 청나라 황실 내 권력 암투와 모략은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을 재미있게 읽게 하는 독서 포인트인데 특히, 홍타이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순치제의 등극 과정은 정말 재미있다. 저자는 순치제 편에서 순치제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하늘이 내린 대청제국의 황위, 하늘이 내린 북경 천도, 원만하지 못한 모자(母子) 사이, 섭정왕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황제, 애첩인 동악비를 따라 세상을 떠난 황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저자가 순치제를 왜 이렇게 분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요소다. 그럼에도 순치제는 어떻게 공식적으로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북경으로 천도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섭정왕 도르곤의 탁월한 역량의 능력에 있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순치제 편에 섭정왕 도르곤의 활약이 생생히 담겨 있다.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은 청나라 제국의 흥망성쇠와 열두 황제들의 성공과 좌절을 살펴보며 독자에게 인생과 미래에 대한 통찰과 안목을 주는 역사서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과 더불어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와 <옹정 황제의 인간경영학>도 함께 읽어볼 만하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는 우리 시각에서 조선을 정복한 청 태종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오늘날 국가와 사회, 기업과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통찰을 기자 특유의 문체로 재미있게 서술하여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옹정 황제의 인간경영학>은 청나라 황제들 중 가장 개혁적인 군주로 평가받는 옹정제의 열정과 근면, 용인술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기업 경영자, 조직의 리더가 읽으면 유익하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청나라 제국의 황제들

옌 총리엔 저 / 장성철

누르하치부터 마지막 황제 부의에 이르기까지
소수이민족으로 대륙을 장악한 대청제국의 지배자들

청왕조, 그들은 어떻게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했는가!오늘의 중국을 만든 이민족 왕조사. 중국의 역사에서 오직 청나라만이 이민족 출신으로 200년 이상의 통일국가를 이루었다.

중국 역사에서 청나라는 이민족 왕조사이자 2천여 년 동안 지속된 황제정치의 종결이며, 유교문화의 말미이기도 하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영위한 청나라는 268년간 지속됐는데 이는 진나라 이후의 2천여 년의 중국봉건왕조사 …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장한식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하라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번 망한 셈이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혀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우리는 실패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진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기가 되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고, 만주족을 라이벌로 여…


옹정황제의 인간 경영학

옹정황제의 인간 경영학

리아오 저 / 김인지

21세기의 리더와 대한민국의 정치가들이 본받아야 할 개혁군주 옹정제의 소통의 정치학과 인간경영술!
현대 중국에 내재된 무한한 잠재력의 원천은 청대의 탁월한 통치자 옹정제에게서 비롯되었다.

거대한 나라 중국이 도약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시대 청조淸朝. 옹정제는 그 청조 안에서 가장 완벽한 황제라 평가받는다. 타고난 지략과 신중함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소통의 정치를 실현한 옹정제는 하루 4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정무에 임하는 근면 성실함으로 조정신료들에게 모범을 보여 역대 …

Aug 142017
 

영화 남한산성을 보기 전에 산수야 출판사에서 출간한 <역사가 숨긴 한반도 정복자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를 읽고 조선을 정복한 오랑캐, 청 태종 홍타이지와 만주족의 굴기를 다시 생각한다.

 비문의 굴욕적인 내용 때문에 1895년 고종은 삼전도비를 땅속에 묻게 했으나 1913년에 일제가 다시 세웠고 1958년에는 당시 문교부의 주도하에 땅속에 다시 묻는 등 비석의 수난은 이어졌다. 1968년 홍수로 비석의 모습이 드러난 후 사적 제101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잠실의 삼전도비 앞에 세워진 안내문의 일부이다. 우리 역사에서 1637 1 조선의 왕이 오랑캐 황제에게 무릎을 꿇은 사건은 땅속에 묻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픈 대목이다. 
병자호란으로 조선을 굴복시킨 만주족은 곧이어 중국을 정복하고 세계 최강의 제국 대청 시대를 열었다. 만주족 성공의 비결은 굳센 의지와 실력이 있다면 작은 나라도 능히 대국에 맞설 수 있다는 오랑캐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 초 만주족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족속의 명운을 걸고 대륙 정복의 길에 나서기로 결단하였다.

같은 오랑캐였지만 순이(順夷)였던 조선과 180도 다른 꿈을 키웠던 역이(逆夷), 만주족의 결단은 오늘의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된다. 그런데 만주족이 견지한 오랑캐 정신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용략이 뛰어난 지도자의 선구자적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지도자가 청 태종 홍타이지(1592~1643)이다.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1637 1 30일 삼전도 들판에서 조선 왕을 무릎 꿇렸다. 그 결과 홍타이지는 한반도 정복자라는, 우리 역사에서 제외시킬 수 없는 인물로 스스로 자리매김하였다.
홍타이지의 행적을 추적하다 보면 용맹과 지략을 동시에 갖춘 쾌남아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새롭고 더욱 큰 것으로 키워내는 2세 경영의 , 창업주를 능가하는 창업정신도 배울 수 있다. 홍타이지를, 17세기 만주족 이야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러나 홍타이지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희미하다. 누르하치나 칭기즈칸은 잘 아는 한국인들이 홍타이지를 망각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땅을 직접 밟는 등 누르하치나 칭기즈칸보다 우리 역사에 훨씬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인데도 말이다.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 번 망한 셈이다. 전광석화 같은 만주군의 공격에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피했다가 결국은 무릎을 꿇었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혔다면, 그래서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조선의 조야는 실패 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 편하게 망각하고 숨기는 길을 택했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다. ‘오랑캐에게 항복했다’는 상처도 아득한 옛 기억일 뿐이다. 이제라도 홍타이지와 만주족이 조선을 침공한 배경, 당대 동아시아의 국력 동학(動學)을 객관적으로 조망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본문 중에서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

장한식

홍타이지와 만주족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직시하라

조선은 병자호란 때 한번 망한 셈이다. 오랑캐라고 얕봤던 족속에게 짓밟혀 수백 년간 부끄러워했다면 우리는 실패원인부터 스스로의 약점까지 철저히 분석했어야 마땅하다. 지금 우리는 한반도와 악연으로 맺어진 홍타이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시기가 되었다. 한민족에게 치욕을 안긴 ‘기분 나쁜 원수’로 단정해 무시하거나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4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만큼 병자호란의 굴욕을 제어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생겼고, 만주족을 라이벌로 여…

 Posted by at 10:4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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